최근 사건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적어본다.




인생에서 길흉을 정확히 반반씩 경험하게 된다면,

불행은 행운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불행이 희망이 되는 순간에 미래는 지금과 같이 불행해질 것이다. 불행이 희망이 된다면 그 불행은 더는 불행이 아니니까.

결국, 현재의 불행을 인정해야만 미래의 행복을 꿈꿀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행운은 미래의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행운이 두려움이 된다면 미래는 행복해 질 가능성이 크다. 두려움은 불행이니까 말이다.

내가 미래에 계속 행복하려면 현재의 행복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적어도 나는 불행을 좀 더 많이 느낀다.

실제로 느끼는 온도와 체감 온도가 다르듯이 길흉에 관해서도 느끼는 정도가 조금 다르다. 즉, 길흉에 대한 체감 온도가 있다는 것이다. 행복이 1만큼 느껴진다면 불행은 1.5로 느껴지는 것. 이게 체감 길흉의 무게이다.

실상 길흉의 무게는 정확히 일대일일 텐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 불행의 정체일지 모른다.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행복한 순간이어도 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엉터리일지 모르는 예측 때문에 두렵고, 현재의 불행에 대해서 쉽게 인정하고 불행한 만큼 좌절해 있는 이것이 내 불행의 정체라는 것이다. 게다가 불행의 무게가 행복보다 더 많이 느껴지니, 난 끝없이 불행 하기만 하게 된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작은 일에 쉽게 반응하는 걸까? 
내가 작을 일에 대범하지 못한 걸까?
내가 남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는 걸까?
언제까지 내가?

차라리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긴 거라면 좋겠다. 여긴 전부 농담과 장난뿐이다. 진심 어린 충고를 얼마나 들어 봤던가. 진심이란 말을 얼마나 쉽게 내뱉고 또 얼마나 쉽게 들었던가.



난 보름달을 보고 싶었다.
먹구름이 가려서 보름달은 희미한 형태만 겨우 보인다.

그래도 지구의 밤은 밝기만 하다.

-하지만 난 보름달을 보고 싶은 걸
보름달 빛을 쬐고 싶은 걸

먹구름은 여전히 비켜서지 않았다.
(기다림과는 무관하다)
아마 어제와 같이 내가 잠들 때 구름은 비켜서리라.

어쩜
먹구름은 아주전부터 비키려고 했는지 모른다.
구름이 너무 커서
구름이 너무 커서
완전히 비켜서 보름달을 보여 주는 데 오래 걸린 거일 뿐

내가 기다리지 못했을 뿐

보름달이 보일 즈음이면 내가 깨어나고 달은 햇빛을 낳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난 보름달을 보고 싶은 걸
보름달 빛을 쬐고 싶은 걸

오늘은 어제 같은 보름달이 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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